[양화진 선교사 열전]이라는 책을 읽었다.
신학을 전공하시고 기독교와 관련된 많은 책을 집필하셨던 전택부 선생님의 책이다.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요약하여 기록하고자 한다.
1. 저자 전택부 선생님
-1915년~2008년
-저서 <기독교사 만필> <토박이 신앙산맥> <양화진외인 열전> <부부의 십계명><월남 이상재의 생애와 사상> <토박이 신앙산맥> <자화상을 그리듯이> 등등
-현재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양화진에는 우리나라를 찾아와 복음을 전하고 순교한 외국인 선교사(양화진 외인 묘지)들의 묘지가 있는데 서울시에서 지하철 공사를 이유로 양화진 외인 묘지를 옮긴다는 기사를 읽고 분노한 저자가 주간신문 기독공보사를 찾아가 양화진에 묻혀 있는 외국인 선교사들에 대한 글 연재를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서울시는 외인 묘지를 건드리지 않았고,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외회는 양화진 경내에 하국기독교선교기념관을 세우게 되었다. (책 속 머리말에서 발췌)
2. 병자들의 친구, 양화진에 가장 처음으로 묻힌 선교사 '존 헤론(John W. Heron, 1856~1890)
-헤론은 양화진에 묻힌 최초의 선교사로 그로 인해 양화진 외국인 묘원이 생겼다.
-테네지 주에서 개교 이래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뉴욕 종합대학 의과대학에서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한다.
-그는 학교로부터 교수가 되어 줄 것을 요청받았지만, 그는 이전부터 조선의 선교사를 꿈 꿨기 때문에 이를 거절하고 1884년 봄에 최초의 장로교파 조선 선교사로 정식 임명을 받는다.
-아내와 1885년 우리나라에 들어온 헤론은 광혜원의 2대 원장이 된다. 당시 우리나라는 1884년 갑신정변을 겪은 해 였고, 한의사들만 있었다. 헤론보다 1년 먼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었던 알렌은 당시 선교사의 신분은 아니었지만 미국 공사의 추천으로 국립병원 원장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 병원이 광혜원(후에 제중원으로 이름이 바뀜)이고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나 현재 세브란스 병원의 전신이다. 이 광혜원은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활동하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알렌의 뒤를 이어 광혜원의 2대 원장이 된 헤론은 고종의 시의로 임명되었고, 명성황후와도 각별한 친분은 유지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보건이나 위생 분야에 매우 무지한 상태였으므로 장티푸스, 호흡기환자, 학질, 회충 등 수많은 각종 질병들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헤론은 조선의 백성들을 돌보기 위해 밤낮 쉬지 않고 병자들을 돌봤다. 그는 병자를 돌보는 것 뿐 아니라 성서를 번역하는 일에도 활동을 했다. 1887년 성서번역 상임위원회의 4명의 번역위원 중 한 사람이 헤론이었다.
-헤론은 한국성교서회를 창립하기도 하였다. 성서변역, 교회설립도 필요하지만 성서와 기독교문서를 출판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그가 한국성교서회를 창설한 것이다.
-이 한국성교서회의 창설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달 전에 한 일이었다. 죽기 며칠 전까지도 성치 못한 몸을 이끌고 6백여리나 되는 먼 시골으로 가서 병자를 치료해 주던 헤론은 전염성 이질에 걸려 앓다가 1890년 7월 26일 숨을 거두었다. 겨우 33세의 나이였다.
-한국에 온지 5년만에 그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우리나라의 병원, 성서번역, 기독교 문서 등으로 복음 전파의 기초 공사를 이루어 놓았다.
-그를 기념하는 기고문(코리안 레포지도토리 기퍼드의 글)에의 내용이다.
"헤론은 청교도적인 성격과 무사적인 성격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는 원리와 명예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1888년 조선 왕실로부터 선교활동을 억제 당하여 여러 선교사들이 우왕좌왕하며 곤경에 빠져 있을 때 헤론만은 강한 의지력을 발휘하여 '보다 조용한 사업 정책'을 가능하게끔 했다....
그는 병상에 누워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자기 심복들을 가까이 불러오게 한 뒤 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임할 것을 기도했다..
그는 의사로서 강한 희생정신과 사랑의 정신과 인술로 모든 어려운 의료사업을 감당해 냈다. 절대로 불평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공금을 허비하는 사례가 가끔 있었는데, 그때에도 그들을 용서하고 도리어 딴 데서 벌어서 갚아주었다. 그는 자기 몸을 아끼는 법이 없었다. 이러한 열화같은 정신력 때문에 조선인들은 가끔 그 앞에서 쩔쩔 맸지만, 그들은 헤론의 사랑과 열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퍽 존경했다..."
#역사를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다보니, 역사시간에 배웠던 중요한 국가 기구들이 대부분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확장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변화란 어디까지 일까.
#누구든 주어진 역할이 있다. 남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맞서는 것이 인간된 도리이고 인간이 계속 지향해야 할 성숙아닌가 싶다. 전택부 선생님이 쓴 글들은 한국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과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일들의 성과와 결과가 당장 내게 오지 않을지라도 의롭고 바른 일을 위한 씨앗이 된다면 이 세상을 사는 인간으로서 이보다 더한 명예와 보람이 있을까.
[위의 내용은 모두 전택부 선생님의 양화진선교사 열전 책의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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